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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미스터트롯 이찬원의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0. 5. 24.

 그는 1996년 11월 1일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구 언양읍에서 태어나게 된다. 울산 성모병원에서 3.4kg으로 태어나게 되며 3살 떄부터 대구광역시 달서구 용산동에서 쭉 자라게 된다.

 "25년 트로트 외길 인생, 이찬원입니다."

 트로트 가수 인찬원의 인사말이다. 젊은 나이에 트로트에 투신했다는 게 정말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트로트를 즐겨 부르며 각종 노래대회를 휩쓸어왔다. 한 마디로 깜짝 스타가 아닌 셈이다. 지금의 인기까지 꾸준히 트로트를 사랑해왔던 그의 삶에 대해 알아봤다.


이찬원의 어린시절


 트로트 신동은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평소 트로트를 즐겨듣던 집안의 영향이 컸다. 그는 3살 무렵부터 집에 있는 음반들을 통해 트로트를 들었다고 한다. 저절로 몸에 밴 구성진 트로트 가락은 초등학교 4학년 떄부터 발휘하기 시작했다. 따로 배운 적도 없지만 이른바 트로트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꺾기' 실력을 연마했고 트로트가 좋고 노래가 좋아 내지르다보니 2년쯤 지나자 저절로 소리가 구수하게 꺾였다고 한다. 청국장 기술 말고도 SBS '스타킹'을 통해 당시 트로트 곡 외에 일반 노래까지도 모두 꺾는 장기를 보여주며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었다. 방송에서 만난 현역 가수 또는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바이브레이션이 뛰어나며 기본 고음도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점은 당시 대구 선원초등학교를 재학 중이던 12살 꼬마였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당시 스타킹 출연진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찬원 SBS '스타킹' 출연


 학창시절에는 초중고 학생회장을 3번이나 맡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전교 회장 선거 유세를 할 때 강진의 <땡벌>을 개사하여 불렀고 그 결과 93:7로 당선이 되었다. 특기할만한 점이 있다면 당시 장래희망은 가수가 아닌 MC였다. 이유는 '스타킹'에 출연하면서 MC라는 직업이 방송 전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TV를 보면서 혼자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진행 연습까지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에 어린 시절부터 가수뿐만 아니라 종합 엔터테이너의 길을 준비해온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각종 행사 MC를 맡았었고 고등학생 떄는 토론 동아리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상경대학 선거운동원, 농활 대장, 학생회 기획 차장, 기획국장, 집행국장, 부학생 회장까지 섭렵했고 군 제대 후에는 부모님께 손벌리기 싫어서 부모님 가게 일을 기본으로 찜닭집에서 직접 요리와 홀서빙, 편의점, 술집, 고깃집, 택배 상하차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한다.

 이후에도 연달아 방송출연을 하면서 미래의 트로트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트로트 등용문의 대명사인 '전국노래자랑'에만 총 4회 출연해 인기상, 우수상, 최우수상을 비롯해 연말 결선 무대까지 초청돼 가능성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남자 스타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병역문제도 일찌감치 해결해 중단 없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이찬원 KBS1TV '전국노래자랑' 초등학교,고등학교,대학생 시절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집안의 반대가 있었다. 평범한 삶을 살기 바랬던 아버지는 10대 시절 이찬원의 연예계 꿈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고 무려 10년 동안 반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현재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TV조선 '미스터 트롯' 경연에서 부른 솔로 곡 모두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곡들이라는 점은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도 노래 실력이 매우 출중하여 가수를 꿈꿨으나 할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하셨다.

 결승 경연에서도 본인이 무슨 노래를 부를지 몇 곡을 정해서 아버지께 전화해 여쭈어보는 장면이 나왔는데, 가수와 노래 제목만 대도 바로 노래를 부르고 확인하시며 아들의 뛰어난 성량을 살리는 선곡을 해주셨다. 아버지께서 얼핏 노래를 부르는 음성이 전파를 탔음에도 이찬원이 누구를 닮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덕분에 미스터트롯 최종순위 3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저희 엄마가 24살 때 결혼하셔서 저를 되게 일찍 보셨어요. 25년을 정말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이라 엄마가 제 인생 롤모델이에요."


이찬원의 군대시절 육군 제25보병사단 병장만기전역


 그동안 트로트를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다. 가요계에서도 젊은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가수들이 마지막 돌파구로 찾는 장르로 여겨졌다. 일부 가수들은 "트로트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됐다."고 공공연히 토로할 정도다.

 하지만 이찬원에겐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트로트를 사랑했고 결국 '미스터 트롯'을 통해 날개를 달 수 있었다. 타 입상자와는 차별점으로 성인 가운데 유일한 20대로 '젊은 트로트'의 부흥기를 주도할 수 있는 적임자다. 가요계에서는 그가 앞으로 대한민국 트로트의 대들보가 돼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5년 트로트의 외길 인생 이찬원. 앞으로 그는 트로트 인생을 어떻게 파헤쳐나갈지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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