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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미스터트롯 장민호의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0. 5. 26.

 그는 음력 1977년 7월 28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장민호는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외모로 일찌감치 연예인을 준비했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실력을 키운 그는 다수의 CF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민호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모델 활동을 했다. 여의도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광고 대행사와 인연을 쌓았다. 엑스트라부터 시작해 고2때는 메인모델로 발탁됐다.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광고 대행사, 에이전시 등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는 어린 나이에 건강 음료등을 들고 찾아가서 드리고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며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광고 엑스트라 기회가 생겼고, 조연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이어 그는 씹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브레인' 껌 광고를 찍으며 당시 머리를 삭발하고 찍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고 스무살 때 찍은 광고라며 당시 수입이 트로트하면서 20년동안 벌었던 수입보다 많았다고 한다. 500~7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장민호는 껌 광고 이후 기획사 연락을 받아 4인조 그룹 유비스로 데뷔했다.


브레인 껌광고


 경력을 접어두고 순수하게 데뷔연차(97-)만 따지고 보면 미스터트롯에 마스터로 출연했던 장윤정(99-), 신지(98-), 김준수(03-), 조영수(03-), 박현빈(06-)보다도 먼저 데뷔했다. 물론 인기를 얻은 것은 2014년 이후이다. 조영수 작곡가의 말에 의하면 실패한 1세대 아이돌들이 겪는 안타까운 길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실제로 그의 성공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데, 노래에도 소질이 있어 가수를 꿈꾸던 장민호는 1996년 연습생으로 시작하여 1997년 남성아이돌 4인조 보이그룹 "유비스(U-BES)"의 'You Will Be with Us'라는 앨범으로 데뷔를 했고 출중한 실력으로 메인보컬을 맡은 그는 '별의 전설'이라는 곡이 히트를 치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 경쟁 아이돌인 H.O.T, 젝스키스의 인기가 엄청났기에 그 후발주자인 유비스는 가려질 수 밖에 없었고 2집 발표 후 돌연 소속사 문제가 불거지며 팀이 해체되었다. 당시 사장한테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장민호 "유비스(U-BES)" 시절


 구둣발로 정강이를 차이기도 했고 당시 공포스러웠던 시간을 보낸 그는 더 이상 가수 생활을 할 수가 없었고 때문에 해체 당시에는 아쉬움보다는 해방감이 무척 컸다고 했다. 그룹에 해체가 되면서 장민호는 대학교 학업에 매진을 했고 생활비를 벌기휘애 2년동안 수영강사를 한 그는 탄탄한 몸매와 외모로 아줌마 회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2004년 발라드 그룹 "바람"으로 데뷔했고 본인의 자의로 노력해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결국 해체를 했는데 당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 그는 좌절감이 매우 컸다고 한다. 당시 뮤직비디오에 손담비가 출연했다고 한다. 손담비의 데뷔작이었다.

 그렇게 그는 군복무 해결을 위해 2007년에 군 입대를 하고 2009년에 전역을 하게 된다.


장민호 "바람"으로 활동했던 시절


 군 전역 후 그는 중국어에도 소질이 있어 잠시 가수 생활을 포기하고 외국항공사 스튜어드 시험을 준비했지만 꿈을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던 중 2011년 트로트가수로 변신하며 '사랑해 누나'라는 곡을 내게 된다. 이후 KBS의 오디션 프로그램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 출연하여 가수 렌과 한 팀으로 최종 우승까지 거머쥐었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시청률이 좋지 않아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그렇게 인지도를 쌓던 장민호는 드디어 2014년에 '남자는 말합니다'가 성인가요 시장에서 히트하면서 17년의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인기가수가 되었다. 트로트 장르의 특성상 메인스트림 방송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서 20-30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미스터트롯 출연 이전에도 이미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트로트계의 BTS가 되었다.

 장민호의 인기를 외모 덕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사실 장민호는 지방의 10명 남짓의 작은 노래교실도 쉴 새 없이 찾아가 자신의 노래를 알렸고 팬들에게 자주 얼굴을 선보이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데뷔 18년 만인 2015년에 트로트로 두 번이나 신인상을 받으면서 드디어 노력의 결실을 서서히 이루기 시작했다. 이후 미스터트롯을 통해 기나긴 무명가수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트로트계의 인기스타가 될 수 있었다.

 미스터트롯 출연 소식에 함께 출연한 출연자들도 상당히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스터로 나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연차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쇼미더머니로 치면 매드클라운이 마미손으로 출연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하니까 말이다.

 월세 20-20만원짜리 집을 살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오래했고 끝까지 안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며 무명 가수 시절을 견뎌왔으나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장민호. 앞으로 그의 트로트계의 앞날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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