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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이승기가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0. 5. 12.

 이승기는 1987년 1월 13일,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학창시절 이승기는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 음악까지 모두 잘 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전교 회장을 두 번씩이나 할 정도로 유명하고 모범생이었습니다. 공부도 잘해 항상 전교 최상위권이었지만 전교 1등은 한 적이 없고 2등까지는 해 봤다고 합니다.

이승기의 학창시절


  그렇게 노곡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계고등학교를 진학한 그는 무엇보다 인간성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남고에서 호감 이미지가 많았던 그는 전교회장 선거 관련 일화가 있는데 데뷔 때문에 출마 신청을 하지 않았으나 마지막 날 결국 전교회장에 출마를 신청하자 기존 후보 두 명이 질게 뻔해 자진사퇴를 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 상계고등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찬/반투표로 전교회장 혼자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는 케이블 프로에서도 언급되었다 합니다. 학교에서 좀 논다는 문제아들도 이승기와는 유순하게 지냈고, 보통 반장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타 반 학생들에 비해 이승기네 반은 이승기가 한마디만 하면 군말 없이 잘 따랐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승기가 머물렀던 동네에서는 '이승기' 이름만 꺼내면 하나같이 좋은 말들만 우수수 쏟아졌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먼지 티끌 하나 안 나는 연예인, 연예인들 사이에서 희귀하다면 희귀하다고 할 수 있는 케이스. 공부 잘 하는 모범생 이승기였으나 사실 공부보다 쉬는 시간에 자투리 시간을 내서 하는 축구에 더 열정적이었던 그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 또래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오직 그 짧은 시간의 축구를 위해 수업시간 내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당시 또래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는 '축구 하자면 바로 해 주는 멋진 친구'라고 알려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축구에 관련된 일화로는 중학교 때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전반 20분경 뒤늦게 등장한 이승기가 혼자 7~8골을 쎄게 몰아넣어 11-1로 이겼다는 일화가 있다고 하네요. 역시 스포츠관련 카페에 이승기의 중학교 동창이 올린 글이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만화 주인공 같은 포스라 믿지 못하자 졸업앨범 사진까지 찍어서 인증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승기는 학교 밴드부 ‘사이퍼(cypher)’라는 유명한 밴드부 보컬이었습니다. 먼데이 키즈의 리드보컬, 이진성 역시 같은 상계고 밴드부 사이퍼 출신입니다. 이승기의 2년 직속선배로, 오디션에서 직접 이승기를 뽑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학교 축제가 열리면 이승기를 보려고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고 할 정도니 이승기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고 합니다. 노래, 축구 외의 취미는 검도라고 하는데요. 어린 시절 3년 정도 검도를 배웠는데, 잘 하는 건 아니고 누가 공격 들어오면 막을 수 있는 호신술 정도는 된다고 하네요
2004년 6월 5일 1집 「나방의 꿈」, 타이틀 곡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를 하고 2005년 1학기 수시로 동국대학교 회과학부(서울캠퍼스)에 당당히 합격 후 방송학에서 후에 국제통상학으로 전과해 09년도 졸업, 곧바로 본교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으로 입학해 예정대로 12년 2월에 수료했습니다. 인기 정상의 연예인답지 않게 출석률이 매우 준수했다고 합니다. 데뷔 당시 이선희의 아끼는 제자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이선희가 직접 운영하는 라이브 소극장에서 이승기가 밴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이선희가 직접 가수 제의를 했으나 당시 이승기 본인은 이선희를 못 알아보고 망설이지도 않고 '아니요'라고 단칼에 거절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집에 돌아 온 이승기의 이야기를 들은 이승기의 어머니가 "무슨 짓이냐?"며 깜짝 놀라는 바람에 그 때서야 "몰라봬서 죄송합니다."라며 어머니의 강한 지지와 추천으로 이선희의 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싸이가 만들어준 개성 강한 데뷔곡이자 최대 히트곡인 1집 나방의 꿈 타이틀곡 '내 여자라니까' 로 연상 누나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방송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후속곡 '삭제'는 데뷔곡 같은 인기를 누리진 않았지만 몇몇 음악팬들에겐 데뷔곡보다 오히려 선호하는 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드라마에 까지 출연을 하게 되는데요.

이승기와 친구들

 2006년에 주말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청률 약 50%에 육박하는 국민드라마가 된 소문난 칠공주로 이승기는 배우로서도 얼굴을 알리게 되고 이후 2007년, 21살 때부터 1박 2일 시즌1에 출연하게 되면서 '미소년 가수'라는 이미지에서 새로운 모습(국민 허당)을 통해 국민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승기가 1박 2일 시즌1에 처음 출연했을 때 1박 2일은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은 10% 내외의 프로그램이었지만 개그맨 캐스팅을 원하던 1박 2일의 이명한, 나영석 피디의 생각과는 달리 이승기의 반듯하고 건강한 청년의 모습이 프로그램에 좋은 시너지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이우정 작가의 판단으로 캐스팅이 이루어진 후 반듯하게 잘 자란 이승기와 그 속에서 보이는 허당스러운 면이 프로그램과 잘 어우러져 프로그램 시너지를 크게 내고 프로그램 인기에 한 축을 이루게 됩니다. 덕분에 이승기는 어머님들의 아이돌로 등극, '국민사위'라는 호칭도 같이 얻게 됩니다.
2009년 상반기에는 첫 정극 주연으로 출연한 SBS 주말 드라마 "찬란한 유산"마저 최고 시청률 47.1%라는 대박을 터뜨려 정말 확실한 '원조 국민 남동생'이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 이승기는 이제 가수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냐?"라는 의문이 당시 나왔고 하지만 리메이크 활동 이후에도 당당히 자기만의 앨범을 발표하고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9년부터 매년 콘서트를 개최해서 가수로서의 의식도 잊지 않을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살인적인 폭풍 스케줄에서 이승기 희망콘서트 준비까지 할 수 있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광편에서 드라마와 예능 합쳐서 시청률이 80%를 찍어 남은 20%의 시청률은 사고를 쳐서 뉴스에서 달성하자고 MC몽이 반농담 삼아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도 이승기의 해는 이어지게 됩니다. SBS 수목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완벽한 성공과 2009년에 이어 골든 디스크에서 2년 연속으로 음원 본상을 수상에 이어 멜론 어워드에서 2관왕까지 이루게 됩니다. 거기다 2010 SBS 연예대상 대상후보까지 오르게 됩니다. 아쉽게도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 수상을 했지만 강호동, 이경규, 유재석이 자리하고 있는 삼파전에 당당히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은 충분했습니다. 또한 SBS 연기대상에서도 3관왕에 올라 2010년 연말 시상식에서만 도합 9관왕의 위엄을 보여주게 됩니다. 더욱 대단한 건 1박 2일 전성기의 한 축, 다수의 게스트들을 상대로 하는 단독 토크쇼 호스트, 드라마 연타석 홈런, 그리고 연예대상 후보등, 이 많은 성과를 만 20살부터 3년 안팎에 다 겪었다는 것입니다.

허당 이승기 선생님


  그렇게 그는 2016년 2월 1일 현역으로 논산 육군 훈련소로 입대 후 2017년 10월 31일 13공수특전임무여단 흑표부대 행정병 병장 만기전역 이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고정 예능, 드라마, 영화 그리고 광고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전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8년에는 고정으로 출연 중인 예능 집사부일체 소속으로 SBS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함으로써 개인 커리어 통산 최고의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프듀 48중 이승기의 한 대사-
“제가 19살 때 데뷔를 해서 1집 데뷔곡이 <내 여자라니까>라는 곡이에요. 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게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했어요. 근데 정말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근데 가장 화려하게 데뷔하고 가장 가능성이 많다고 점쳐지던 시기에 회사 대표님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 연예인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흔히들 그런 표현을 쓰죠. ‘왕이 될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저는 이 왕관이 ‘대중들의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때의 저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씌어준 아주 작은 왕관의 무게도 너무 버거워서 도망가고 싶었던 것도 같아요. 그래서 합숙소에서 짐을 다 싸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학교 다니면서 저는 정말 다른 직업을 택하려고 했어요. 근데... 없더라고요 잘할 수 있는게 제가 가장 잘하고 행복했던 건 노래할 때 제일 행복했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나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는 순간이 노래하던 순간이더라구요.
아마 되게 힘들었을 거에요. 그리고 하는 동안 늘 힘들거에요.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좋든 나쁘든 여러분들의 머리에는 이미 작은 사이즈의 왕관이 다 올라가있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험하고 모진 말하지만 트레이닝팀 선생님들 역시 여러분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대요. 왜냐하면 경쟁을 해서 누군가가 반드시 이기고 진 사람은 많이 슬프겠죠. 그 상실감을 보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대요.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딜 12명이 최종적으로 선발이 되는거고 지금 제가 말하는 이 왕관의 무게를 무겁겠지만 버텨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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