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윤종신이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0. 7. 8.

 그는 196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에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5살 무렵 서울 광진구로 상경하게 되었고 그 뒤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당시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라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진학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터보라는 이름의 스쿨밴드로 활동을 했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이 신앙심이 많아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미래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적응을 못해서 1,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대학교 시절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원래 음악을 좋아했던 편이라 작곡도 취미로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꿈은 가수였고 우연히 연세대 미래캠퍼스 가요제에 참가했다가 금상으로 수상 후,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만약 그가 신학과에 합격했다면 목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기 때문에 가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부터 기독교 음악을 많이 들어서인지 그의 음악 스타일은 찬송가의 느낌이 매우 강하다. 그는 미래캠퍼스 홍보비디오에도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을 소개받았고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을 하게 된다.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비주얼이 부족하다며 장호일은 반대했으나 윤종신의 특유의 친화력으로 정석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둘이 친해지면서 장호일은 그를 멤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창력만으로 승부를 선 데뷔였고 그리하여 1990년 7월 15일, 015B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면서 그가 가수로서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 5집을 제외한 6집까지 계속 객원보컬로 참여하였다.



015B 맴버


 1991년 솔로 1집을 내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 등 히트를 기록했고 정규 4집부터는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프로듀싱도 겸하게 된다. 5집부터는 싱어송라이터로 완연히 거듭나게 되었고 객원보컬로 시작하여 프로 작곡가, 작사가로 인정을 받은셈이다.

 하지만 1998년 제대 이후 IMF로 인해 음반시장의 침체로 7,8집이 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영화와 예능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 여러편의 영화 OST를 프로듀싱하며 카메오로 출연을 하면서 연기자로서의 활동도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에도 (2001년) 여름 시즌 송 9집 타이틀 팥빙수라는 노래가 히트를 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라디오 스타, 패밀리가 떴다, 나는 가수다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예능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당시 어르신이라는 별명으로 <패밀리가 떴다>에서 찌개에 라면스프를 넣으며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SBS <패밀리가 떴다> 5화에서 윤종신의 라면수프가 첫 등장했다.


 2017년에는 6월 발매한 <좋니>가 대히트를 치며 데뷔 27년만에 공중파 1위를 하는 쾌거도 이루게 되었다. 좋니는 음원을 발표하고 두 달 뒤에 차트에 오르게 되었는데 점점 순위가 올라가더니 20위에 들었을때 그는 '이게 뭐지?' 싶었다고 했다. 이어 차트 10위에 올랐을 때 그는 너무 기뻐서 이제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입소문으로 이런 사단이 났다면서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고 한다.



좋니 음원차트 1위

 2000년대에 비해 창법도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고 2020년 현재 무려 20집 가수이다.

 그는 현재 방송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고 여러 방송에서 하차했다. 2019년 10월 해외로 출국하였으며 이후 2021년 3월까지 해외에서 휴식하면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떠한 노래를 구민들에게 보여줄지 기대를 해본다.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아래의 하트를 눌러주시고 구독과 댓글을 달아주세요. 하트를 눌러주시면 다음 포스팅을 준비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