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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이민호가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1. 7. 26.

 그는 1987년 6월 2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부모님과 누나 1명이 있다. 그는 어린시절 꿈이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차범근의 축구교실에 다니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축구연습 중에 부상을 당해서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던 와중에 학창시절 많은 길거리 캐스팅을 제안을 받았었고 그로인해 고등학교 1학년 쯤부터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2003년에 반올림, 2004년에 논스톱 등 단역으로 출연을 하였다. 이후 잡지모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소속사 사장을 만나 연기자의 길에 본격적인 도전을 하게 되었다.

 

 2006년 건국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 입학 후에 여러 곳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2006년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에 박보영과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친구인 정일우와 여행 중에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을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로 인해 거침없이 하이킥, 9회말2아웃 등 여러 드라마 캐스팅이 취소가 되었다. 이 교통사고로 1년간 휴식을 취했고 이후 연기자 생활을 위해 2009년에 철심을 제거하게 된다.

 교통사고 이후 2007년 첫 주연작인 SBS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에 문채원과 출연했지만 시청률 부진과 여러 문제가 겹쳐서 24회에서 8회로 조기종영 되기도 했으며 같은 해에 드라마 아이 엠 샘과 영화 울 학교 이티, 강철중 : 공공의 적에 출연했는데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는데 바로 2009년 진행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였다. 무려 2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그가 구준표 역을 연기했는데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몇 년간의 무명생활을 마감하고 단번에 톱스타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광고도 몇 십개를 찍으며 CF모델 남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꽃보다 남자는 아시아 각지에 수출되며 차기 한류스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실제로 중국 국제제선이라는 곳에서 2009년 가장 인기있는 한국 스타를 뽑은적이 있는데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2010년에는 MBC드라마 개인의 취향, 2011년에는 시티헌터에 출연했는데 특히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2012년에는 SBS드라마 신의, 2013년에는 SBS드라마 상속자들에 출연을 해 2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상속자들로 연말시상식에서 5관왕을 달성했고 특히 중국에서도 또 한번 큰 인기를 끌었는데 외국인이 출연하기 힘들다는 중국 CCTV 춘완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해서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2014년에는 동아시아권 한류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2015년에는 영화 강남 1970에 출연했는데 그의 새로운 연기 변신에 호평을 받았고 눈빛 연기, 액션 연기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임에도 관객 수 220만명을 동원해 좋은 서적을 거두었다. 2016년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 출연했고 21%의 시청률을 기록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해제후에 복귀작으로 그는 더킹 : 영원의 군주에 출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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