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78년 2월 24일 서울특별시 송파구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는 어린시절에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그룹을 보며 춤에 대한 동경을 가졌고 이 동경은 그를 춤을 추게 만들었다. 어린시절 그는 학예회, 축제 무대 등 자신이 춤출 수 있는 곳 어디서든 춤을 추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백댄서로 활동하거나 댄스대회에 나가 우승할 정도로 뛰어난 춤실력을 가지게 된다. 댄스대회에 우승한 뒤 그는 SM 오디션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이 오디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이수만 대표와 밥도 먹고 계약서도 받았으나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막연하게 대학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 계약서에 사인하는 대신 체대 입시를 준비하게 되면서 그는 용인대 경호학과에 입학했다. 다만 이후 경호원으로서의 삶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대학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여전히 춤이 좋았기에 대학 생활 대신 춤에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춤과 관련된 일들은 잘 풀리지 않았고 그는 뛰어난 춤실력을 보이며 스머프라는 댄스 그룹에 합류해 무려 공중파 음악 방송에서 데뷔 무대를 가지기도 하였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춤과 관련하여 남다른 결과를 만들지 못했고 이는 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이렇게 춤과 관련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즈음 그는 힙합 댄스를 접하게 되고 그렇게 춤을 좋아하던 그였기에 자연스럽게 힙합댄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힙합댄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미국의 힙합 그룹 우탱클랜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랩에 대한 흥미를 느꼈고 이에 그는 음악을 하려면 춤보다는 랩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랩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음악을 듣고 연습하며 자신의 랩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힙합 그룹 엑스틴 객원 멤버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고 이 엑스틴에서 길을 만나게 된다. 개리와 길은 둘 다 엑스틴의 객원 멤버였기에 둘은 통하는 게 많아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둘은 엑스틴 이후에도 함께하며 허니패밀리에 합류해 랩교, 우리 같이 해요와 같은 히트곡에 참여해 래퍼로서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개리와 길은 행사도 뛰고 이 행사에 300명 가까이 되는 팬을 이끌며 래퍼로서 성공하는 듯 하였지만 이 성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허니패밀리는 2집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 하며 흩어졌고 여기에 더해 음악을 한다며 소홀히 했던 대학교에서까지 잘리며 그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다.
사채를 배워볼까?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성공과 관련된 책 한권을 읽게 된다. 책에는 전망 좋은 직업, 월수입이 얼마나 되는지와 같은 내용이 있었고 그는 이 내용을 볼펜으로 체크하며 책을 읽어갔다. 그리고 돈과 관련된 기나긴 문자의 흐름 속에서 그는 한 단어를 보게 된다. 바로 저작권이다. 책은 저작권 수입이 사후 50년까지 나온다 말했고 이 문장을 읽은 그는 가사를 열심히 쓰면 음악을 그만 둘 이유가 없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PC방으로 달려가 국내 힙합 앨범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음악을 찾아 듣고 가사를 분석하며 드렁큰타이거, 개코와 최자가 있던 CB매스, 주석, 조PD 당대 유명래퍼들과 그들이 속해 있는 팀들을 분석했다. 그는 이 과정을 매일 3시간씩 반복했고 그러던 중 길과 팀을 하자는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와 길은 함께 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리쌍이라는 팀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음반을 내기까지 아이돌에게 랩을 가르치고 모은 200만원으로 1년을 버텼다. 아침에 김치볶음밥 3인분을 만들어 점심, 저녁을 내리 해결했고 집 밖으로는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절친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선을 그은 그는 오직 집에 박혀 음악을 듣고 가사를 쓰고 랩을 하였다. 개리와 길은 앨범을 내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고 아는 누나의 소개로 정인을 소개받으며 리쌍의 1집 앨범은 완성을 향해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200년 개리와 길은 1억원의 빚을 내 리쌍 1집을 내놓았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타이틀곡 'Rush'는 대중들의 호응을 받았고 이 'Rush'로 개리와 길은 엠넷 2002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힙합 부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을 들어 올린다. 1집의 성공 이후 그는 1집이 잘 됐어도 2집이 망하면 3집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2집 작업에 몰두하였으며 2집 작업을 하며 개리와 길 둘 다 연애를 했기에 둘은 사랑 노래를 만들어 '리쌍부르쓰'를 탄생시킨다. '리쌍부르쓰'는 타이틀곡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리쌍의 성공은 2집에서 멈추지 않고 3집까지 발매 첫날 매진을 하며 각종 음원차트를 휩쓸게 된다. 특히 3집 타이틀곡 '내가 웃는게 아니야'는 컬러링 다운로드 순위 1위를 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이 사랑으로 리쌍은 지상파 첫 무대에서 1위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보였다. 3집 앨범은 대박을 치며 리쌍의 이름으로 널리 알렸고 이후 4집 그리고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를 타이틀곡으로 한 6집을 크게 성공시키며 리쌍 그리고 개리와 길은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둔다.
(예능에 도전한 개리)
2010년 7월 그는 런닝맨의 멤버로 합류하였다. 하지만 그의 런닝맨 적응은 쉽지 않았으며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히 많은 카메라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껴 이러한 상황에서 내뱉는 말과 행동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자신이 프로그램에 피해를 주는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하네 집에서 합숙을 하며 2~3시간씩 의논했지만 하하는 그에게 캐릭터만 잡히면 돼, 재석이 형이 알아서 해줄거야와 같은 태평한 소리만 하였다. 그런데 하하의 말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유재석은 개리에게 월요 커플, 평온 개리 등 캐릭터를 만들어 주었고 캐릭터가 생기자 그는 물만난 물고기 마냥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는 월요커플, 평온 개리 외에도 시크릿 개리, 꾸깃 개리, 개리쒸, 돌쇠 개리, 잠실 사는 강개리 등 온갖 별명이 붙으며 활약했고 그의 뛰어난 활약에 사람들은 갖고 싶다 강개리를 연발하며 그에게 열광했다. 개리 그리고 런닝맨 멤버들의 활약속에 런닝맨의 인기는 크게 늘기 시작했고 이 인기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이어졌다. 런닝맨은 해외 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는 일약 한류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한편 그는 런닝맨 멤버로 활동하면서도 음악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2011년 리쌍은 'TV를 껐네'를 선공개하며 7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리쌍 7집은 멜론, 엠넷 등 온갖 차트를 휩쓸었고 'TV를 껐네'는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1위 자리를 지키며 2011 최장수 음원에 등극하였다. 'TV를 껐네' 외에도 '나란 놈은 답은 너다'와 '회상'도 오랜 기간 5위권 내에 유지하며 리쌍 7집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치며 리쌍에게 또 다시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그는 음악과 예능 두 분야 모두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런닝맨을 녹화하는 주말을 빼고는 작업실에 나와 12시간씩 작업하던 그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2016년 음악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런닝맨을 하차하였으며 이후 그는 음악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고민', '태양' 등 신곡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저스디스, 한요한 등 신예 래퍼들과도 작업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0년 그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다시 예능에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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