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001년 2월 19일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3살 겅음마를 시작하면서 공을 가지고 놀았고 5살 때는 완벽한 슈팅을 선보일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그리고 그는 TV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면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된다. 같은 나이대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축구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축구 천재로 불리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화제를 모았다. 놀라운 건 7살 때 유상철과 골대 맞추기 승부를 해서 이긴 바 있고 9살 때는 플립플랩, 마르세유턴, 라보나킥, 시저스와 같은 고난이도 기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 10살 때는 심폐지구력 측정 테스트에서 동나이대 체육영재 중에서 상위 0.1% 안에 들어갈 정도로 신체적으로도 뛰어났다. 그의 가족은 아들의 축구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렸고 이후 이강인은 테스트를 받기 위해 발렌시아로 떠나게 된다.
첫 대화 당시 언어의 장벽이 컸던 바람에 실수로 이강인은 2000년생들과 같이 테스트를 받게 된다. 이들 중에는 선수 페란 토레스, 아벨 루이스, 우고 기야몬 같은 유망한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특별한 선수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몇 번의 볼터치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구단은 이강인이 의심할 여지 없는 선수라 생각했으나 10살밖에 되지 않은 한국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승우 선수가 받은 유소년 제한 규정 떄문이었다. 따라서 그를 영입할 유일한 방법은 온 가족이 발렌시아로 이민을 오는 것뿐이었다. 발렌시아는 가족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강인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약 일주일 뒤, 사무실의 벨이 울렸다. 이강인의 아버지였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발렌시아에서 살 겁니다." 가족은 발렌시아에서 뛰고 싶은 아들의 꿈을 위해 모든 걸 두고 왔다. 그야말로 가족의 인생을 건 도박이자 모험이었다.
스페인에 정착한 초기 몇 년은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그는 번역기가 내장된 휴대폰을 들고 다녔지만 가족들은 그럼 적응을 못할테니 번역기를 두고다녀라며 그의 적응을 도왔다. 그는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한 선수였다. 그는 마치 군인처럼 절제했다. 이것들은 태권도 관장이셨던 아버지에게서 배운 사고방식이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페인 학교에서 단 한과목도 낙제를 받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가 숙제를 해오지 않아 이목을 끌었으나 아버지가 양손에 공책을 잔뜩 든 채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게 이강인은 가족의 희생을 부담이 아닌 동기부여로 삼아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그가 발렌시아에서 보낸 일곱 시즌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강인은 알레빈 C 다음 해에 알레빈 A로 월반(학생의 성적이 뛰어나 상급 학년으로 건너뛰어 진급하다.)한 뒤 팀을 브루네테대회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한 시즌 뒤 그는 인판틸 B로 올라가 성인과 똑같은 '11인 축구'를 하며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여줬다. "8인제 축구는 그에게 너무 좁았다."라고 관계자들이 평가했다. 이강인은 빛의 속도로 성장했고 여러팀의 관심을 받았다. 구단은 첫 메이저 재계약이라는 승부수를 뒀다. 다음해 이강인은 나빌과 함께 인판틸 A 리그 득점 기록을 세우고 리그 첫 경기만 비기고 나머지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시련이 찾아왔다. 보수적이었던 유소년 단장 호세 라몬 알렉산코는 어린선수가 월반하는 걸 원치 않았고 나빌과 이강인을 강제로 카데테 A에서 한 해를 더 뛰도록 했다. 이강인과 가족들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알렉산코가 침묵하는 사이 나빌은 16살이 되던 해 자유를 얻자 멘체스터 시티로 가 버렸다. 그제서야 알렉산코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인이 16세가 될 때까지는 불과 15일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강인과 가족들은 발렌시아에 머물고 싶어 했고 2019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강인은 필드에서 그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COTIF 2017 U-20 부문에서 팀을 준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참고로 발렌시아 유스시절 이스코 선수 또한 이 대회에 출전해 MVP를 받았고 라울, 세르히오 부스케츠, 하메스 로드리게스, 다니엘 알베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이 대회 출신들이다. 또한 현 발렌시아 감독 마르셀리노 가르시아와 함께 1군에서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마르셀리노는 첫날부터 이강인과 사랑에 빠졌고 선수의 재계약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강인의 활약과 함께 레알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등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결국 발렌시아 단장 마테우 알레마니는 계약을 직접 처리하려고 나섰다. 단장은 80m(약 1,058억원)의 바이아웃, 프리시즌 1군훈련 약속과 함께 이강인의 계약을 2022년 6월 30일까지 연장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31일 이강인은 코파 델 레이 32강 1차전 에브로와의 경기에서 '34번'을 달고 1군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34번은 그가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을 때와 같은 번호로 마치 운명같은 우연이었다. 수준높은 왼발, 특출난 경기 시야,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볼을 찰 때의 대담함 이제 이강인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질수록 그는 필드안팎에서 더욱 특별한 선수가 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의 대한민국과 본인의 새 역사를 써갈일만 남았다. 앞으로 그의 활동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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