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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박명수가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0. 6. 3.

 그는 1970년 9월 27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무한도전에서도 꾸준히 군산시 출신이라고 밝혔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남동생이 있으며 현재에도 양친 모두 건강하다. 참고로 어머니 신갑순씨가 결혼 당시 19세의 나이로 굉장히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박명수를 낳았다고 한다.


박명수 어린시절 모습 (사진출처 : MBC <무한도전>)


 아버지께서 중동으로 가서 돈을 벌어 오시기도 했고 귀국 후 아버지는 운수업을, 어머니가 컬러 TV가 있는 만화방까지 운영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이 망하면서 그 많던 재산을 날리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200만원 융자금을 받아서 사글세 방에서 다시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고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사 와서 방화동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개그맨의 꿈을 품고 방송계에 데뷔를 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한 동안 3사  방송사를 돌아다니며 무작정 들이미는 과정을 반복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공항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시절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방청객으로 참가했는데 당시 '일반인이 저렇게 특이하게 생겼네'라고 놀랐고 독보적인 존재를 통해 이때 눈여겨본 관계자들에게 권유를 받아 KBS에서 FD로 잠시 일하게 된다. 당시 그는 방청석 첫째 줄에 앉아있었다.4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방청객으로 참여한 모습, 당시 첫째줄에 앉아있었다. (사진출처 : KBS <해피투게더3>)


 이때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MC 손범수가 웃기고 재능있다며 그에게 방송 데뷔를 권유했고 이후 그는 1993년에 참가한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김학도와 함께 장려상을 받으면서 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서의 활동을 하게 된다. 박명수는 데뷔를 하자 마자 이름을 알리고 무명시절이 거의 없던 개그맨이었다. 개성적인 연기와 개그를 펼쳐보여 <웃으면 복이 와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오늘은 좋은 날>, <인생 극장>을 통해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90년대 활동당시 가수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그의 언급이 몇 번 있었는데 그저 말로만 희망사항으로 내 뱉을 줄 알았던 그가 정말로 1999년 7월 <바보사랑>으로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된다. 1997년 1집 <체인지>는 매우 진지했다. '하늘도 정말이지 무심한거야/왜 네겐 기회를 주지 않아...' 강렬한 하우스 리듬의 타이틀곡 '바보사랑'에는 개그적인 요소가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 그는 가수로서 좋은 음색과 춤 솜씨로 승부하려 했다.

 1집 앨범에는 이승철과 부른 듀엣곡도 있었다. 두 사람은 이승철 원곡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를 비슷한 창법으로 새롭게 불러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2000년 발표된 2집 <바다의 왕자>에서는 기다리던 히트곡도 나왔다. 타이틀곡 <바다의 왕자>가 여름 댄스 시장을 석권하면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박명수는 이후 2002년 3집 <바람의 아들>을, 2005년 4집 <탈랄라>을 발표하는 등 2~3년에  한 번씩 음반을 소개하고 무대에 섰다. 또한 2005년에 독도 사랑을 담은 싱글 <We love 독도>를 발표하고, 2008년에도 발라드곡 '바보에게 바보가', 2010년엔 댄스곡 '파이아'를 내고 가수 계보를 이어나가게 된다. 7번째가 되는 싱글 '꿈이었을까'는 정통 발라드곡으로, 깊어가는 가을, 상심을 위로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렇게 그는 개그맨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2006년부터는 2018년까지 MBC <무한도전>에서 주로 '거성', '소년명수', '하찮은', '찮은이형', '쭈구리' 등의 별명을 통해 호통개그, 비판개그로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무한도전을 통해 응급실에도 실려간적이 몇 번 있었는데 방송과 스탭, 멤버들을 위해 방송 촬영을 그대로 진행했었고 결국 2018년 <아내의 맛> 출연 당시 병원에 방문했을 때 심각한 건강상태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는 사업쪽으로도 뛰어들었었다. 여의도 교촌치킨, 임실치즈피자 등의 프렌차이즈를 운영했으며 직접 매운 물냉면을 출시해 홈쇼핑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바생을 구하는게 힘들어 온 가족에 가게 일을 동원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자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2008년 탈모 전문 쇼핑몰 '거성닷컴'과 2009년 말에는 가발 브랜드 '모하니'를 런칭하게 되고 본격적인 탈모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그는 헤어중모제를 홈쇼핑에 런칭하며 직접 출연해 흑채 사용을 직접 보여주며 당시 2000개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고 약 1억 4천여 만원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그는 방송과 사업을 통해 차곡차곡 부를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발 사업은 현재도 운영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CJ오쇼핑에 출연한 박명수. 자신의 제품을 사용해 자신의 머리숱을 직접 보여주며 제품의 신뢰를 보여주고있다.


여의도 교촌치킨 당시 직접 치킨 배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8살 연하의 의사 한수민 씨와 결혼했으며, 2008년 딸 박민서 양을 얻었다. 2008년 10월 13일 전라남도 영광에서 열린 제 89회 전국체전 에어로빅 단체전 동호인 부분에서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은메달을 딴 바가 있다. 그리고 2009년 무한도전에서 했던 봅슬레이를 계기로 대한체육회 봅슬레이 선수로 등록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한도전과 타 방송프로그램을 위해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지만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해드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제로 타인에게 배려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겉으로는 차가울지 몰라도 속으로는 굉장히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앞으로 그가 다시 건강이 회복되었으면 좋겠고 앞으로 그의 앞날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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