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93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금강연화의 본명은 안성준이다. 그는 중학생 때까지는 전국체전에 출전하던 수영선수였다. 수영을 하면서 수영선수의 꿈을 그리던 와중에 부모님께서는 수영은 1등이 아니면 어렵다고 하셔서 그는 현실적인 이유로 수영을 포기했고 그렇게 긴 시간동안 방황을 했었다고 한다. 운동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수영을 포기하고 그렇게 슬럼프가 찾아와서 힘들게 학교에 다니던 와중에 마침 미용고등학교에서 홍보를 나왔고 그리고는 팸플릿을 받자마자 "이거다!"라는 확신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팸플릿을 들고 집에 찾아가서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부모님께서도 놀라셨다고 한다.
한때는 그를 좌절하게 만든 수영이었지만 이제는 체력도 관리해주고 스트레스도 풀어주는 좋은 취미생활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남인천 고등학교 미용예술과를 입학해 그때부터 좋아하던 게임을 끊고 시험기간때는 학교에서 필기한 내용을 3번씩 읽으며 전교 2등을 했었다고 한다. 모발학이 정말 재미있어서 직접 찾아서 공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대학교도 뷰티과에 입학을 했고 수원과학대학교 헤어미용과를 졸업한 뒤 미용교사자격증까지 취득했다고 한다.
군대에서도 이발병으로 복무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안성준씨가 복무한 군 부대는 부대 전체를 관할하는 이발병들을 뽑고 이 병사들과 군무원이 병사이발관을 운영했는데, 그가 복무하던 대대는 사람 수가 많고 부대외곽에 위치한 소대가 많아서 대대이발병을 따로 두었었다고 한다. 그는 그 대대이발병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군대에서나마 머리를 정성스러게 잘라주었는데 나머지 한 명은 본인보다 짬이 낮거나 안 친하면 그냥 밀어버려서 사람들이 점점 안성준씨에게 쏠리게 되었고 업무분배를 할 때 그의 관할이 아니던 소대 병사들이 주말에 단체로 그를 찾아가는 등의 일을 벌여 그가 격무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를 대충 막 자른다는 그 이발병은 금강연화보다 선임이어서 그는 별 항의를 못했고 그의 격무는 그 선임 이발병이 전역하고 신임 이발병이 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이발병으로 국방의 복무를 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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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에 '어벤져스'라는 헤어샵을 오픈할 때 가진 것이 없어서 12개월 할부로 간판을 올렸었다고 한다. 그리곤 주변 미용실보다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 사장님이 되자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헤어샵을 오픈하자마자 "손님이 많이 오겠지"라며 큰 기대를 했는데 한 명도 없었고 매출이 0원인 날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손님이 없으면 할게 없었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무언가 이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해서 그 때 아무 생각 없이 미디어 플랫폼 sns을 확인해봤더니 헤어를 다루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왜 없지?" 생각하다가 내가 해보자 해서 그렇게 그는 헤어 콘텐츠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나 손쉽게 미용정보를 얻을 수 있또록 콘텐츠를 제작한 것이다. 변화를 기다린다고 했지만 사실 그 변화를 주기 시작한 건 안성준씨 스스로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성공했던 건 아니다. 구독자 한 명 없이 혼자서 방송을 하기도 했었고 그렇게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일터에서 벗어나 집에서도 미용 공부를 한다고 한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이제는 해외에 있는 영상을 보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정보를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계속 보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미용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배움의 열정도 커졌고 지금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꿈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용 공부를 하다 보면 자신이 부족한 게 뭔지 깨닫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느끼면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느껴서 자괴감이 몰려오기 때문에 그게 안되면 제 자신이 허용이 안된다고 한다. 운동을 그만두고 전교 꼴지에서 벗어나질 못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고선 매일 공부하는게 즐거웠다는 안성준씨 그리고 나의 배움이 누군가의 기쁨이 되어 돌아오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모든 일이던 일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용 같은 경우도 스태프일 때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미용만 공부했고 디자이너가 되니까 마케팅 공부를 해야 되고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다보니 경영자가 되어서 경영까지 배워야 되고 이제는 경영을 하다 보니 미디어 쪽을 하다보니까 미디어 플랫폼을 공부해야되고 끝이 없는 것 같은거에요. 그런데 이게 정말 재미있어요. 끝이 없는 골인 지점이 없는 마라톤을 하는 것 같은데 이거를 계속 꾸준히 달리다 보니 나오더라고요. 결과물이 작더라도 한두개씩은요."
골인 지검이 없는 마라톤을 하고 있따는 안성준씨, 하지만 그 길을 꾸준히 달리다 보니 무언가는 나오더라고 한다. 작더라도 한 두 개씩은 꼭 말이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느려도 괜찮으니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성준씨도 그리고 우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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