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김연아가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0. 12. 14.

 그녀는 1990년 9월 5일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서 태어났다. 신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장중학교와 수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전공을 졸업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3살 터울의 언니가 있으며 그녀가 7살이 되던 해에 군포시로 이사가면서 과천시의 실내 빙상장을 찾았다가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본격적인 선수생활과 동시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각종 국내피겨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처음으로 국제대회인 2002년 4월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대회인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같은 해 11월에 열린 크로아티아 골든베어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녀는 세계적인 선수로 나아갈 수 있는 한국피겨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12살에 트리플 점프 5종인 러츠, 플립, 토룹, 룹, 살코를 소화해냈으며 2003년인 중학교 1학년 때 최연소 국가 대표로 선발되게 된다. (노비스 부문 : 만 10세 이상, 주니어 부문 : 만 13세 이상, 시니어 부문 : 만 15세 이상)


김연아의 어린시절모습


김연아의 어린시절 스케이트를 타는모습


 2004년부터 주니어 국제무대에 데뷔하며 헝가리에서 열린 ISU 공인 헝가리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3회전 5회전 점프를 성공시키며 1위를 거머쥐었으며 이 후 중국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와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2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피겨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2006년 3월에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으며 이 시즌에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고난도 점프인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토룹 연속 점프를 모두 성공시키며 본격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국제무대에서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에는 캐나다에서 개최된 시니어 데뷔 첫 무대에서 3위를 기록하며 그녀의 실력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중간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시니어 대회를 준비하면서 연습도 많이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그녀는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쉬면 몸이 굳으니 조금만 참아보자는 어머니의 말씀에 다시 한 번 더 힘을 내어 연습하였고 그러다 발목에 부상까지 입자 자신이 스케이트를 타는 로봇 같다는 생각에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두려고 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연습을 그만두니 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고 다시 오랫동안 꿈꾸었던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로 달려 나가기 위해 스케이트 화를 신게 된다.

 그렇게 2007년 5월부터 체계적이고 안정된 훈련을 위해 연습장소를 캐나다 토론토로 옮기게 되고 주니어시절부터 그녀와 함께한 김세열 코치를 떠나 캐나다의 브라이언 오서로 코치를 변경하게 된다.

 2010년 벤쿠버 올림픽 한달 전에는 발목부상을 당하며 경기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으나 부상을 딛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쇼트에서 78.50점을 받으며 세계기록을 경신하였으며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실수 없는 완벽한 연기를 펼쳐 당시 세계최고기록인 150.06점을 받으며 합계 228.56점으로 아시아인으로 두 번째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획득과 2018년 평창올림픽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자신의 목표를 다 이루었다고 생각해 돌연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피겨 꿈나무들의 올림픽 출전권 티켓을 획득하기 위해 은퇴는 잠시 미루고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게 되고 그렇게 보여준 프리스케이팅 레미제라블은 전 세계인들에게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아쉽게도 그녀의 프로그램 중 역대급으로 가장 아름다운 경기를 선보였으나 오심으로 인해 2위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과 진심이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졌는지 그녀가 진정한 올림픽금메달리스트라며 아낌없는 박수와 갈채가 이어졌다. 대중들의 여론이 반영되어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그녀가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로 성화를 점화를 하게 되었고 놀라움과 설레임 그리고 감동 등을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전해주어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아래의 하트를 눌러주시고 구독과 댓글을 달아주세요. 아래의 하트를 눌러주시면 다음 글을 포스팅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