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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방탄소년단 정국(전정국)이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1. 4. 5.

 그는 1997년 9월 1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사람이름 정, 나라 국으로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이 담긴 이 이름은 그의 친할아버지께서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낳기 전 비가 내리는데 빗방울이 다 황금으로 변하는 태몽을 꾸었다.

 

전정국의 어린시절 모습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부산백양초등학교 시절 전국 체력장에서 2등을 하기도 했고 게임을 좋아해 한때 프로게이머를 꿈꾸기도 했다. 스케일이 남달라서 친구들이 인터넷 게임을 할 때 자신은 부모님 몰래 싱글게임과 CD게임을 구매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가수로 꿈을 전향하게 되는데 바로 지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 뮤비를 본 후였다. 동경에서 시작된 꿈이 어느새 그를 오디션장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고 그렇게 그의 방탄소년단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부산 백양중학교에 재학중이던 14살 때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 지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 숫기가 없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는 카메라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여 이런 성격 때문에 2차 부산예선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잘생긴 외모에 노래에 춤까지 내재한 끼를 기획사들이 그를 먼저 알아봤고 그렇게 그는 수많은 연예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후 기획사를 둘러보던 중 빅히트에 견학을 갔다가 당시 연습생이었던 랩몬스터의 연습하는 모습에 반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하여 중학교 2학년 때 빅히트의 연습생으로 입사를 하게 된다.

 

 그렇게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춤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뛰어난 춤 실력으로 연습생 평가 1등을 차지하면서 데뷔 한달 전 손성득 안무가의 손에 이끌려 미국에서 한 달간 유명안무가들에게 다양한 댄스를 배우며 성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댄스 장르에 매료되어 아이돌을 안 하고 안무가가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방탄소년단에서 제일 중요한 멤버인데 너가 이러면 안된다며 지민이 그를 만류했고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는 연습생으로 신분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중3이 되던 2013년 그는 1년여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방탄소년단으로 데뷔를 했다. 파워풀한 댄스부터 섬세한 춤까지 해를 거듭할 수록 그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감성적이고 신기한 음색인 가창력까지 겸비해 현재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까지 매료시키고 있다. 그는 데뷔 후 미소년에서 깔끔한 미남으로 급격히 성장했고 그의 음악성 역시 갈수록 더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현재는 격한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안정적이고 훌륭한 라이브를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n.o에서 미소년의 외모를 보여주던 정국은 피땀눈물, DNA에서 소년의 피를 확실히 벗고 잘생긴 미남으로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댄스는 물론 랩, 보컬, 작사, 작곡까지 다양해 만능 포지션을 자랑하는 정국 그의 첫 자작곡 화양연화 파트1 아웃트로 Love is not over은 물론 그가 작곡한 화양연화 Young Forever 앨범에서 그의 타고난 음악성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떠한 파워풀한 모습으로 무대위에서 대중들에게 선보일지 많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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