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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방탄소년단 지민이 살아온 인생스토리

by 세바시인턴 2021. 4. 19.

 그는 1995년 10월 13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회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윤상중학교를 거쳐 부산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학창시절 2년간 반장을 할 정도로 모범생이었으며 리더쉽이 뛰어나고 교유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예인을 꿈꾸었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 후 춤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가수 비의 무대를 보고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춤출 때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했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팝핀을 시작해 수많은 대회의 상을 휩쓸 만큼 춤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지민과 동생의 어린시절 모습

 

 부모님께서는 그가 전문직이 되길 바라셨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그는 그의 아버지께 현대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런 아들의 꿈을 지지해준 부모님을 위해 그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현대무용을 시작한지 1년도 안되어서 부산예술고등학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고 무용과에서는 전체 수석이 나온건 그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를 직접 가르친 현대무용학원 김도경 원장은 항상 그가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수업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늘 열심히 다녔다고 밝혔으며 하나를 알려주면 이것저것 변형을 시키면서 늘 확인을 받을만큼 열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 당시 워낙 춤 실력이 출중해 중국단기연수학생에서도 선발되었는데 이때 배운 중국의 마샬아츠는 방탄소년단이 고난도 퍼포먼스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1000:1의 오디션을 합격한 그는 가수의 꿈을 위해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으나 멤버들의 포지션이 모두 정해진 다음 입사했기 떄문에 그를 어떻게 멤버로 세울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그는 스트릿댄스와 현대무용을 통해 춤의 기본은 갖췄지만 KPOP 댄스와 현대무용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에 현대무용을 전공한 것이 연습과정에서 큰 발목을 잡게 되면서 춤을 잘 못춰서 데뷔가 어려워질 뻔도 했다고 한다. 현대무용과는 안무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오직 그는 연습만이 살길이었고 할 수 없을때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오죽하면 스탭분들이 연습하는 것을 말릴정도로 지독하게 쉬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연습생 기간 6개월만에 방탄소년단의 메인댄서이자 리드보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2016년 Mnet 아시아 뮤직어워드에서 안대를 두른 채 360도 두바퀴 회전의 무대정면을 향해 정확히 착지하는 안무를 선보여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으며 2018년 멜론 뮤직어워드의 부채춤은 무대 직후 월드 트렌드 2위와 40개국 트렌드에 올랐을 정도로 그의 춤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춤의 제왕이란 찬사를 듣고 있는 그는 남성미와 여성미가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는 작사에도 실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직접 작사 작곡을 참여한 윙즈 앨범의 Lie와 러브 유어셀프 승허 앨범의 인트로 'Serendipity'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 앨범의 'Serendipity'등 세계의 솔로곡을 보유중이며 그는 단 세곡만으로 2억 스트리밍을 가볍게 넘겼다. 그가 작사 작곡한 솔로곡 약속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역대 최다 스트리밍 탑10중 9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약속은 24시간 내에 최다 스트리밍 신기록을 보유해 케이팝 프론트맨으로서 수식을 얻었다.

 이러한 성공은 모두 목표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멤버들도 인정한 연습벌레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그가 앞으로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많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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